에두아르 마네 Édouard Manet
1832년 1월 23일 ~ 1883년 4월 30일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초상_나다르, 1874
초기작인 '풀밭 위의 점심 식사'와 올랭피아 는 엄청난 비난을 불러 일으켰다
물론 비난만 받은 것이 아니라 수많은 젊은 화가들을 주변에 모으는 힘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
이들이 후에 인상파로 전환 됐다고 하는데 여튼 나중이야기다.
(나중에 '풀밭 위의 점심 식사'도 공부 해 봐야겠다)
나는 올랭피아 이야기만으로도 벅차다.
보수적인 사람들은 작품이
"음란하고 상스럽다"
저널리스트 안토니아 프루스트가 회상하길
"만일 올랭피아가 파괴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관리자가 붙인 주의사항 때문일 것이다."
라 말했다.
'올랭피아는 당시 창녀들이 즐겨쓰던 이름이기도 하고 뒤마의 소설에 나오는 창부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당시, 매춘과 성병은 사회적으로 큰문제였다고 하죠. 이 누드에 나타난 가죽목끈, 팔찌, 나막신 등이 창부들이 즐겨 사용했던 물건이었죠' - 이은경 선생님 페이스북 인용
https://www.facebook.com/100003387844324/posts/1724739040982341/
문득 지난 주 읽었던
사토리얼리스트 클로저의
한 문장이 생각난다
'실제로 사물을 새롭게
바라보려면
성숙함이 필요하다'
성으로 보지 않고
성숙함으로 바라봤을 때
올랭피아가
보이지 않았을까
by Harry

에밀 졸라는 이 작품을 마네의 "걸작"으로 칭하고
"현재 다른 화가들은 비너스의 거짓만을 표현할때, 마네는 스스로 물었다. 왜 거짓말을 해야하는지 왜 진실을 얘기하지 않는지?"
라 말했다.
올랭피아는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 조르조네의 '잠자는 비너스'에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그럼 또 비너스를 한 번 보자


그리고 흑인하녀가 있는 누드화도 참고 하였는데 앵그르의〈오달리스크와 그 노예〉(1842), 프랑수아 레온 베노우빌레의 〈에스더와 오달리스크〉(1844)이다. 그 중 앵그로의〈그랑 오달리스크〉(1814)와 많은 비교를 한다.
오달리스크(odalisque)는 터키 궁정에서 시중을 들던 여자 노예 또는 *총희(寵姬)를 말하는 프랑스어다
*총희(寵姬) 특별한 귀염과 사랑을 받는 여자
18세기 말부터 앵그르, 마티스, 르누아르 등 프랑스 화가 그림의 소재로 많이 다루었다고 한다.
오달리스크라는 제목의 그림을 여러번 봐왔지만 이렇게 내용을 알지 못했던 자신이 조금 부끄럽다.
말이 나왔으니 오달리스크도 보자.



Grande Odalisque Jean Auguste Dominique Ingres, 1814
어쩌다 보니 헐벗은 그림들이 가득한 포스트가 되었지만
이번에 올랭피아 를 보면서 깨달은 것은 진실을 보고,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용기와 성숙함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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